예술/문화

한국 근현대미술가 우향 박래현, 이제는 거장이라 불러야 할 이름

'김기창의 아내'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진 박래현의 1960년대 수묵추상을 다시 읽는다. 앞으로 한국 미술 시장이 주목할 한국근현대 미술의 여류 거장 박래현

 15. , < >, 1962 , 속에서 종이에 채색 >, 1963, , 종이에 수묵채색, 150×135.5 cm, 종이에 수묵담채, 121×105 cm,
 15. , < >, 1962 , 속에서 종이에 채색 >, 1963, , 종이에 수묵채색, 150×135.5 cm, 종이에 수묵담채, 121×105 cm,

박래현, 김기창의 아내 그리고 전시장의 이단

우향(雨鄕) 박래현(혹은 과거에는 '박내현'으로 표기하기도 했던)의 이름 앞에는 오랫동안 한 가지 수식어가 붙어다녔다. 바로 '김기창의 아내'다. 두 사람이 함께 부부전을 열면 평단은 김기창의 작품을 먼저 논했고 박래현의 작품은 그 뒤를 따랐다. 1950년대 박래현이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던 시절에도 그 수식어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수식어는 박래현의 사후에도 그를 따라다니며 때로는 박래현의 근현대미술 작품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가림막이 되기도 했다. 한국근현대 미술의 역사 속 여성 작가 박래현, 그 이름의 홀로 서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오늘날의 우리가 박래현을 김기창의 아내로 기억할지라도, 동시대 비평가는 박래현의 작품을 그 자체로 생각보다 정확하게 읽고 있었던 것 같다. 1962년 김기창과의 제6회 부부전에서 박래현은 이 전시에서 구체적인 형상을 완전히 지운 색채 덩어리만으로 구성된 추상 작품들을 대거 출품했는데 당시 평론가 이구열은 이 작품들을 가리켜 "완전한 추상 공간과 구조를 갖춘 전시장의 이단과 같은 작품"이라고 썼다. 이단. 찬사인지 경계인지 알 수 없는 말이지만 박래현의 작품들이 당대의 문법을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정확히 포착한 표현이었다.

한국근현대미술가, 박래현이란 누구인가?

우향(雨鄕) 박래현(1920-1976)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일본 도쿄여자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귀국 후 동양화로 전향해, 두 미술 세계를 동시에 흡수한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였다. 1950년대에는 전통 수묵에 입체주의(큐비즘)적 감각을 접목한 독자적인 화풍으로 국전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1960년대에는 완전한 추상의 세계로 나아갔다. 말년에는 그림의 경계를 넘어 태피스트리(직물 예술)와 판화로 매체를 확장했다. 화가 김기창의 배우자로 오랫동안 소개되어왔지만, 박래현의 작품은 누군가의 아내라는 수식어와 무관하게 독립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다. 다만 박래현 작품 세계의 발전에서 남편 김기창을 포함한 동시대 한국 근현대미술 화가들과 교류의 흔적을 다수 찾을 수 있다.

도 15. 박래현, <불안>, 1962년 박래현 불안 1962년 종이에 수묵담채 121x105cm 적갈색 색면과 수평 먹선 하단 소형 색점 구성 개인소장 도 16. 박래현, <잊혀진 역사 속에서>, 1963년 박래현 잊혀진 역사 속에서 1963년 종이에 채색 150.5x135.5cm 황색 등황색 색면과 사각형 먹선 구조 개인소장 도 17. 박래현, <작품 7>, 1965년 박래현 작품7 1965년 종이에 수묵채색 150x135.5cm 청색 흑색 색면과 수직 먹선 대비 구성 개인소장

박래현 아티클 시리즈는 이단 박래현의 작품들을 다시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한국근현대 미술과 미술 시장을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 나는 박래현의 작품이 지금보다 훨씬 더 주목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박서보에서 이우환으로, 그리고 이배로 그 다음으로 미술계의 관심이 근현대미술가 박래현의 삶과 작품에 미칠 것이라 믿는다.

1960년대 화단이 선택한 언어 앵포르멜과 박래현은 달랐다

1960년대 한국 화단은 분주했다. 서양에서 건너온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의 물결이 동양화단까지 밀려들던 시절이었다. 묵림회를 중심으로 서세옥 민경갑 정탁영 같은 작가들이 수묵으로 앵포르멜을 실험하고 있었고 한국 미술계 전반에 전위적인 기운이 돌았다. 박래현도 이 흐름 안에 있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구상에서 벗어나 추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고 1962년 부부전에서 마침내 완전한 추상의 세계로 진입했다.

앵포르멜(Art Informel) 미술이란 무엇일까?

앵포르멜(Art Informel)은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일어난 추상미술 운동이다. '형식이 없다'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비롯된 이름처럼, 미리 계획된 형태나 구도 없이 작가의 내면 충동과 감정을 즉흥적으로 화면에 쏟아내는 방식을 취했다. 전쟁의 폐허와 실존적 불안이 거칠고 격렬한 붓질, 두텁게 쌓인 물감, 우연의 흔적으로 표출되었다. 1950-60년대 한국 화단에도 이 흐름이 빠르게 유입되었고, 서양화단뿐 아니라 수묵을 다루는 동양화단에서도 앵포르멜적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도 30. 불스, <It's All Over - The City(모든 것이 끝났다 - 도시)>, 1947년 불스 Wols It's All Over The City 1947년 캔버스에 유화 81x81cm 황갈색 배경 중심부 방사형 검은 선과 얼룩 청색 점 산포 앵포르멜 즉흥적 마티에르 휴스턴 메닐 컬렉션 도 31. 불스, <Oui, Oui, Oui(네, 네, 네)>, 1947년 불스 Wols Oui Oui Oui 1947년 캔버스에 유화 흑적색 배경 위 붉은 선과 물감 분출 격렬한 앵포르멜 추상 표현 휴스턴 메닐 컬렉션 도 32. 장 포트리에, <Tête d'otage No. 14 (인질 No. 14의 머리)>, 1944년 장 포트리에 인질 No.14의 머리 1944년 판자 위 유화 적갈색 배경 두꺼운 마티에르 인물 형상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컬렉션

당시 한국 근현대미술이 흡수한 서구 미술의 언어는 미국보다 프랑스 쪽에 훨씬 가까웠다. 김환기, 이성자, 남관 같은 작가들이 파리로 건너가 현지 화단과 직접 교류했고, 그들이 귀국하거나 국내로 전달한 감각이 당대 한국 화단 전반에 스며들었다. 흥미롭게도 뉴욕이 아니라 파리가 한국 근현대미술의 첫 번째 창구였던 셈이다.

그러나 박래현의 1960년대 수묵추상은 지금까지 많은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1950년대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채색수묵화나 1960년대 중후반 이후 활발히 제작된 맷방석 시리즈에 비해 이 시기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낯설다. 한국근현대 미술사에서 박래현이 처음으로 '완전한' 추상을 시도한 바로 그 시기가 박래현의 여정 중 가장 덜 주목 받은 시기로 남아있는 것이다.


밖으로 터뜨리지 않고 안으로 스미었던 박래현의 수묵추상

박래현의 1960년대 수묵추상을 처음 마주하면 묘한 긴장감이 있다. 강렬한 원색의 색면들이 화면을 압도하는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색면이 수만 개의 작은 먹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 번의 붓질로 쓸어내린 것이 아니라 점 하나 하나를 찍어 쌓아올린 것이다. 같은 시기 묵림회 작가들이 먹을 흘리고 튀기고 흩뿌리며 우연의 효과를 끌어냈다면 박래현은 정반대의 방향을 택했다. 철저한 계획과 장인적 반복이 박래현의 언어였다.

<작품 6>의 하단을 보면 비슷한 크기의 파란 먹점 세 개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이 세 개의 점은 우연히 찍힌 것으로, 드롭 페인팅의 점들처럼 우연히 흘려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 만약 박래현의 작품이 잭슨 폴록처럼 계획되지 않은 움직임에 의한 것이라면, 이렇게 나란한 먹점이 생기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당대 한국 화단에서 크게 유행했던 프랑스에서 수입된 미술사조 앵포르멜의 핵심이 내면의 충동을 즉흥적으로 표출하는 데 있었다면 박래현의 번짐 효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된 것이었다. 동시대 비평가 김영주가 그의 작품에서 "감춰있는 지성의 빛"을 읽어낸 것은 정확한 관찰이었다.

도 21. 박래현, <작품 6>, 1968년 박래현 작품6 1968년 종이에 수묵채색 150x135cm 청흑색 대형 색면과 하단 파란 먹점 세 개 개인소장 도 22. 박래현, <작품 1>, 1960년대 중반 박래현 작품1 1960년대 중반 종이에 수묵담채 115x101cm 적갈색 황색 흑색 색면 집적 수묵추상 개인소장 도 23. 박래현, <작품 6> 상세 박래현 작품6 상세 먹이 한지에 스미는 발묵 효과와 청색 먹점 집적 디테일

당시 서구 앵포르멜을 대표하는 작가들은 내면의 불안과 충동을 캔버스 위에 거칠게 쏟아냈다. 불스(Wols)의 작품에서 보이는 격렬한 선들은 전쟁 후 유럽의 트라우마가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결과물이었다. 장 포트리에(Jean Fautrier)는 석고와 물감을 두텁게 쌓아올리며 촉각적인 상처의 흔적을 만들었다. 이들에게 마티에르란 내면을 밖으로 터뜨리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박래현은 달랐다. 수묵이 한지 속으로 스며드는 방식을 택했다. 물질을 쌓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안으로 침투하게 했다. 당대 조선일보는 박래현의 작품을 두고 '색감이 내면으로 흡입되는' 마티에르를 구현한 것이라 말했다.

마티에르(Matière)란 무엇일까?

마티에르(Matière)는 프랑스어로 '재료' 혹은 '물질'을 뜻하는 말인데, 미술에서는물감이나 먹 같은 재료가 화면 위에 남기는 물질적 흔적, 즉 두께감·질감·스며듦의 방식 전체를 의미한다. 같은 물감을 쓰더라도 얇게 칠하느냐, 두텁게 쌓느냐, 흘러내리게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마티에르가 만들어진다. 작가의 손이 재료와 만나는 방식, 그 물질적 결과물이 그림의 표면에 남긴 모든 흔적이 마티에르다. 그래서 마티에르는 단순한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가 세계를 다루는 방식 그 자체를 드러내는 언어이기도 하다.

불스(Wols), 무제 (Wikipedia 대표 이미지) 불스 Wols 앵포르멜 추상 작품 황갈색 배경 위 중심부에서 방사형으로 폭발하는 검은 선과 얼룩 청색 점 산포 격렬한 즉흥적 마티에르

밖으로 분출하는 언어와 안으로 침잠하는 언어는 같은 추상이라는 이름 아래 있었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한국근현대 미술사에서 박래현의 수묵추상이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분류되어온 것은 이 차이를 충분히 읽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왜 곧 미술시장은 박래현을 찾게 될까

그렇다면 박래현은 어떤 의도로 이로한 작품을 만들었을까? 서구 앵포르멜이 전후의 불안을 표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박래현은 동양화의 전통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방향을 택했다. 먹이 한지 속으로 스며드는 발묵의 원리는 수묵화에서 수백 년간 이어온 기법이었는데 박래현은 그것을 추상의 문법 안으로 끌어들였다.

전통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당대의 동시대 미술과 공명할 수 있는 시각언어를 치열하게 연구하여 작품을 만들어냈다. 같은 시기 묵림회 작가들도 수묵으로 추상을 시도했다. 서세옥과 민경갑이 먹을 흘리고 튀기며 화면 밖으로 에너지를 분출했다면 박래현은 무수한 먹점을 꼼꼼히 찍어 색면을 쌓아올렸다. 재료도 같고 시대도 같았지만 결과물은 전혀 달랐다. 동시대 수묵추상을 시도한 화가들 사이에서도 박래현의 작품은 다양한 색채와 섬세한 표현 면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전시 포스터 — 탄생 100주년 기념: 박래현, 삼중통역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박래현 삼중통역자 탄생 100주년 기념전 포스터 2020년 9월 24일부터 2021년 1월 3일 박래현, <단장>, 1943년 박래현 단장 1943년 종이에 채색 131x154.7cm 검은 기모노 차림 여성 인물 입체적 구성 개인소장 박래현, <노점A>, 1956년 박래현 노점A 1956년 종이에 채색 267x210cm 시장 여성 인물들 군상 입체파 영향 수묵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은 '삼중통역자'라는 이름으로 박래현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열었다. 한국근현대 미술사에서 박래현을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 사이를 동시에 통역한 작가로 자리매김한 전시였다. 35년 만에 138점의 작품이 대거 공개됐고 평단 또한 그 작업의 밀도에 놀랐다. 뒤늦은 재조명이었지만 의미 있는 출발점이었다. 현재 박래현의 근현대미술 작품은 접근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방문하면 늘 좋은 (공기도 좋은) 국립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서울대공원 리프트를 타고 가는 코스를 좋아하는데, 서울대공원 리프트는 2026년을 끝으로 곤돌라로 바뀌는 공사에 돌입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 MMCA 전시에 아쉬움도 남았다. 전시는 박래현의 생애 전반을 폭넓게 다루었지만 1960년대 수묵추상은 상대적으로 얕게 다루어졌다. 회화에서 태피스트리로 판화로 이어지는 매체의 전환에 방점이 찍히다 보니 각 시기 작품들이 가진 고유한 언어가 충분히 읽히지 못했다. 무엇보다 '삼중통역자'라는 전시명 자체가 박래현의 삶을 김기창을 보조하는 역할에서 출발한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수식어를 걷어내려는 전시가 또 다른 방식으로 그 수식어를 상기시켰던 셈이다.

한국근현대 미술에서 박래현의 1960년대 수묵추상이 지금 다시 읽혀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근현대미술의 재발견이라기보다, 박래현의 작품들이 가진 언어가 동시대 미술의 관점에서도 공명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박래현의 1960년대 수묵추상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같은 시대 같은 화단 안에서 박래현이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어서 다음 아티클에서는 같은 시대 같은 한국 동양 화단 안에서 박래현의 시도는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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