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프랑켄탈러와 박래현, 소크스테인과 수묵추상 그리고 '번짐'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미술사 전통에서 출발한 두 작가가 같은 지점에 도달했다. 박래현과 헬렌 프랑켄탈러의 작품 속 번짐 효과를 살펴본다.
1950년대 뉴욕에서 탄생한 헬렌 프랑켄탈러의 소크스테인 작품
1952년 뉴욕. 헬렌 프랑켄탈러는 초벌 칠을 하지 않은 투박한 면포 위에 묽은 아크릴 물감을 쏟아붓는다. 물감이 캔버스 표면에 스며들며 번진다. 그렇게 탄생한 <Mountains and Sea>는 추상표현주의 이후 미국 미술의 방향을 바꾼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물감과 캔버스가 하나로 합체되는 소크스테인(soak-stain) 기법은 이후 컬러 필드 페인팅이라는 새로운 흐름의 시작점이 되었다. 같은 시기 서울에서 박래현은 한지 위에 먹을 찍고 또 찍으며 색면을 쌓아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몰랐고 아마 만난 적도 없었다을 것이다.
헬렌 프랑켄탈러란 누구일까?

헬렌 프랑켄탈러(Helen Frankenthaler, 1928-2011)는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에서 영향을 받아 1952년 소크스테인(soak-stain) 기법을 처음 선보인 미국의 추상화가다. 초벌 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에 희석된 아크릴 물감을 직접 부어 얼룩지거나 스며들도록 하는 방식으로 물감과 캔버스가 하나로 합체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1953년 모리스 루이스가 프랑켄탈러의 작품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자신의 양식을 변화시키면서 스테인 페인팅은 미국 미술계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전후 미국 추상화가 2세대를 대표하며 추상표현주의로부터 컬러 필드 페인팅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두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놓으면 유사한 요소들이 있다. 둘 작품 모두 재료가 표면 속으로 스며드는 효과를 탐구했다. 둘 다 번짐의 흔적이 발생하지 않은 바탕의 여백을 그대로 노출했다. 둘 다 색면들 사이에 여유를 두며 각 요소들이 숨 쉴 공간을 만들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전통 위에서 출발한 두 작가가 비슷한 시기 흥미롭게도 비슷한 시각적 결과에 도달한 것이다.
서로 다른 현대 미술의 시계열에서 태어난 번짐 효과
그러나 두 작가의 번짐은 출발점이 달랐다. 프랑켄탈러의 소크스테인 기법은 클레멘트 그린버그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비평의 맥락 위에 있었다. 회화라는 매체가 지닌 물리적 조건인 평면성과 물질성을 드러내는 것이 목표였다. 투박한 캔버스의 생지가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물감이 스며드는 표면인 캔버스라는 회화의 물질적 조건을 인식시키는 장치였다. 이는 잭슨 폴록 이후 추상표현주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컬러 필드 페인팅이라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프랑켄탈러에게 번짐은 매체의 순수성을 탐구하는 방법이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모더니즘의 탄생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는 20세기 중반 미국 미술 비평을 주도한 이론가다. 그는 모더니즘 회화의 본질은 매체 고유의 특성을 탐구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회화라면 회화만이 가진 조건인 평면성과 물질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 안에서 캔버스에 물감이 스며드는 프랑켄탈러의 소크스테인 기법은 단순한 기법적 실험이 아니라 회화의 물질적 조건 자체를 인식시키는 행위로 평가받았다. 그린버그의 비평은 추상표현주의 이후 미국 미술의 방향을 규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프랑켄탈러의 작업이 컬러 필드 페인팅이라는 흐름으로 이어지는 데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반면 박래현의 번짐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수묵이 한지 속으로 스며드는 방식은 동양화에서 수백 년간 이어온 발묵법(發墨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었다. 박래현에게 한지의 여백은 프랑켄탈러의 생지 캔버스처럼 매체의 물질적 조건을 드러내는 장치가 아니었다. 전통 수묵화에서 여백이 그려진 것만큼이나 중요한 조형 요소였듯 박래현의 여백은 수묵의 번짐과 상호작용하며 동양화 특유의 여운을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조형 언어였다. 프랑켄탈러가 매체의 한계를 인식시키려 했다면 박래현은 전통의 가능성을 확장하려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프랑켄탈러의 여백과 박래현의 여백
프랑켄탈러의 <Round trip>(1957)을 보면 연보라색 녹색 노란색의 색면들이 캔버스에 스며들어 번진다. 색면들 사이의 생지 캔버스가 그대로 노출되는데 이 여백은 물감이 닿지 않은 표면 자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관람자는 그 여백을 통해 캔버스라는 물질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박래현의 1960년대 후반 작품에서도 한지의 흰 여백이 색면들 사이에 남아있다. 그런데 그 여백이 만들어내는 느낌은 다르다. 물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숨을 고르게 한다. 전통 문인화에서 의도적인 여백이 여운을 만들어냈던 방식과 닮아있다.
박래현의 <작품>(1960년대 후반)과 프랑켄탈러의 <Round trip>을 나란히 놓으면 시각적으로 유사한 지점들이 보인다. 색면의 비정형적 경계 번짐이 발생하지 않은 바탕의 노출 일부 흑선의 사용이 그러한 부분이다. 그러나 두 작품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같지 않다. 프랑켄탈러의 화면이 색채의 자율성을 향해 열려있다면 박래현의 화면은 안으로 수렴하는 느낌이 있다. 같은 방법이지만 다른 정신이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박래현의 작품이 서구 모더니즘과 교차하는 지점
프랑켄탈러와 박래현의 비교는 단순한 유사성을 찾기 위한 것은 아니다. 같은 시기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 위에서 출발한 두 작가가 재료의 번짐이라는 지점에서 교차했다는 사실은 박래현의 작업이 가진 위치를 다르게 읽게 만든다. 앞선 아티클에서 확인해본 것처럼, 박래현의 수묵추상은 한국 동양화단의 내부 실험으로만 읽힐 수도 있었다. 그러나 프랑켄탈러와의 비교는 박래현의 작업이 동시대 국제 미술의 흐름과 공명하는 지점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양화의 전통 안에서 출발했지만 그 도달점은 국제적인 언어와 교차하고 있었다.
실제로 박래현은 1960년대 내내 국제 미술계와 활발하게 교류했다. 1958년 뉴욕 월드 하우스 갤러리 초청 현대한국화전에 참여했고 대만과 일본을 순회하며 아시아 현대미술의 동향을 직접 경험했다. 1965년에는 김기창과 함께 미국의 미술관들을 탐방한 뒤 파리 이탈리아 이집트 인도 태국을 방문했으며 1967년부터 1968년까지는 프랑스 예술인협회 초청 한국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박래현의 추상 실험이 고도화된 1960년대는 프랑켄탈러를 비롯한 컬러 필드 페인팅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 박래현이 국제 미술계의 흐름을 감지하고 이를 자신의 언어로 소화했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다. (어쨋거나 이 모든 것은 전혀 학술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나의 상상이지만! 그 상상이 나를 설레게 한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방식의 차이
프랑켄탈러가 잭슨 폴록 이후 추상표현주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면 박래현은 동양화의 토대 위에서 현대화를 모색했다. 두 작가 모두 이전 세대의 방법론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방식을 찾고 있었다. 프랑켄탈러가 폴록의 드리핑에서 한 걸음 나아가 색채 자체의 자율성을 탐구했다면 박래현은 전통 수묵화의 발묵법과 적묵법을 현대 추상의 문법 안으로 끌어들였다. 서로 다른 전통에서 출발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두 작업이 같은 시대에 재료의 번짐이라는 지점에서 만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 교차점은 박래현의 작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준다. 한국 근현대미술사 안에서만 읽히던 박래현의 수묵추상이 동시대 국제 미술의 흐름과 나란히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컬렉터들이 단색화 이후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들에 대한 관심을 넓혀가고 있는 지금 이 교차점은 단순한 미술사적 발견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동양화의 전통 안에서 출발했지만 서구 모더니즘과 교차하는 언어를 가진 작가는 국제 시장에서 다르게 읽힐 수 있다.

두 현대미술 여성 작가와 재료의 번짐을 생각하며
재료의 번짐이라는 지점이라는 지점에서 만났던 두 현대미술의 화가를 만나보았다. 프랑켄탈러의 번짐이 서구 모더니즘의 논리 안에서 자리를 찾았다면 박래현의 번짐은 동양화의 오랜 감각 위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프랑켄탈러는 뉴욕이라는 당시 세계 미술의 중심지에서 활동했고 클레멘트 그린버그라는 영향력 있는 비평가의 주목을 받으며 미술사적 맥락 안에 빠르게 편입되었다.
반면 박래현은 한국이라는 지리적 조건 위에서 동양화라는 당시 국제 미술계에서 비주류였던 먹이라는 매체로 작업했으며 이 시리즈의 1편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김기창의 아내'라는 수식어가 오랫동안 이름 앞에 붙어다녔다. 그래서인지 박래현의 작품들이 글로벌 미술사조와 연결되는 시도는 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는 박래현에 대한 짧은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작업실의 박래현 작가. 1960년대 추상화 작업 시기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https://framerusercontent.com/images/GmQnt5RMsnaXumm8RACNgAexFUg.png)
작업실의 박래현 작가. 1960년대 추상화 작업 시기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보나 로그 아티클 더보기
Category 문화/예술
Be the first to know about every new letter.
No spam, unsubscribe any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