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향 박래현의 수묵추상과 먹점이 만든 세계 (vs 김환기 전면점화)
박래현의 1960년대 수묵추상은 즉흥이 아니라 설계였다. 수만 개의 먹점이 쌓여 하나의 색면이 되는 방법론을 작품을 통해 살펴본 박래현의 작품들

멀리서 보면 덩어리, 가까이 보면 집적

한국 근현대미술 시장에서 반복과 집적의 방법론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김환기다.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132억 원에 낙찰된 전면점화 '우주'는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으로 남아있고 이후에도 한국 미술품 경매 역사 최고가 1위부터 3위를 모두 김환기의 전면점화가 차지하고 있다.
무수한 점을 찍어 화면을 채우는 전면점화는 반복된 행위가 하나의 거대한 색면을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2010년대 중후반 단색화 열풍이 국내외 미술시장을 뜨겁게 달구면서 반복과 집적이라는 방법론에 대한 글로벌 컬렉터들의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 그런데 김환기보다 앞서 비슷한 방향을 걷고 있던 작가가 있었다. 바로 우향 박래현이다. 수만 개의 먹점을 찍어 색면을 만드는 방식은 뉴욕 시대 김환기의 대표적인 푸른 전면점화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두 한국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에서는 모두 점으로 이뤄진 반복된 행위가 하나의 화면을 완성한하고 있다.
번짐처럼 보이지만 번짐이 아닌 것들
박래현의 1960년대 수묵추상 작품 앞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강렬한 색면이 보인다. 적갈색 황색 흑색의 덩어리들이 화면을 압도한다. 그런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그 색면이 수만 개의 작은 먹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즉 멀리서 보면 덩어리이고 가까이 보면 집적이다. 색면은 한 번의 붓질로 메워진 것이 아니라 점 하나 하나를 찍고 또 찍어 쌓아올려진 것이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접어든 1960년대 박래현의 수묵추상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색면과 먹선이 함께 등장하는 1960년부터 1965년 사이의 작품군 먹선이 사라지고 색면이 전면에 나서는 1966년부터 1968년 사이의 작품군 그리고 엽전 꾸러미 혹은 맷방석 모티브가 등장하는 1965년부터 1969년 사이의 작품군이다. 세 시기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느 시기에도 먹점의 집적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래현 작품의 치밀함은 색면의 경계를 보면 더 잘 드러난다. <불안>(1962)을 보면 적갈색 색면의 가장자리가 한지 위에서 자연스럽게 번지듯 마무리된다. 우연히 스민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경계의 밀도는 균일하다. 같은 굵기의 먹점들이 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잊혀진 역사 속에서>(1963)에서는 황색과 등황색 색면을 감싸는 먹선이 등장하는데 그 선의 굵기와 속도감이 색면의 팽창을 의도적으로 제어하고 있다. 박래현에게 번짐은 우연이 만들어낸 효과가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결과였다.

이것이 박래현을 당대 앵포르멜 작가들과 구분 짓는 핵심이다. 불스(Wols)의 작품에서 선들은 내면의 충동이 손을 통해 그대로 흘러나온 것이다. 계획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반면 박래현의 먹점은 하나하나가 판단의 결과다. 어디에 찍을지 얼마나 찍을지 어떤 간격으로 배치할지를 매번 결정하며 나아간다. 충동의 언어가 아니라 판단의 언어다. 그리고 그 판단들이 수만 번 쌓여 하나의 색면이 된다.
먹선이 사라지고 색면만 남았을 때 생기는 일
<작품 7>(1965)에서는 작품 안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초기 작품들에서 색면과 함께 등장하던 먹선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색면이 전면으로 나서면서 화면은 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먹선이라는 구조적 틀이 사라진 자리를 먹점의 집적만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청색과 흑색 색면이 수직으로 대비되는 <작품 7>을 보면 두 색면 사이의 경계가 선으로 그어진 것이 아니라 먹점의 밀도 차이로만 구분된다. 선 없이 경계를 만드는 방식이다.
1968년작 <작품 6>에 이르면 이 방법론은 완성에 가까워진다. 150×135cm의 대형 화면을 청흑색 색면 하나가 압도하고 하단에는 파란 먹점 세 개가 나란히 자리잡는다. 여백과 색면의 비율 색면 안에서 먹점의 농담 차이 하단 세 점의 배치까지 화면의 모든 요소가 제자리에 있다는 느낌은 오랜 시간 쌓아온 판단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즉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지가 재료가 아니라 언어가 되는 순간
박래현의 작품에서 한지는 단순한 지지체가 아니다. 서구 앵포르멜 작가들이 캔버스를 물감을 받아내는 표면으로 다루었다면 박래현에게 한지는 먹과 함께 작동하는 또 하나의 재료였다. 먹이 한지 속으로 스며들 때 생겨나는 번짐의 속도와 범위는 한지의 두께와 수분량에 따라 달라진다. 박래현은 그 변수들을 통제하며 원하는 색면의 경계를 만들어냈다. 한지의 물성 자체가 조형의 도구가 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박래현의 수묵추상은 서구 추상과 결정적으로 갈라진다. 헬렌 프랑켄탈러가 생지 캔버스에 물감을 흘려 번짐을 만들어낼 때 그것은 매체의 물성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그러나 한국 화가 박래현의 번짐은 다르다. 수백 년간 동양화가 한지와 먹의 관계를 통해 쌓아온 감각이 추상의 형식 안에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한국의 동양화 전통이 글로벌 현대 미술의 흐름과 공명하며 1960년대 박래현의 작품 안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헬렌 프랑켄탈러란 누구일까?
헬렌 프랑켄탈러(Helen Frankenthaler, 1928-2011)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이후 색면 회화 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1952년 그는 생지 캔버스, 즉 프라이밍 처리를 하지 않은 날것의 캔버스 위에 물감을 물처럼 묽게 희석해 흘려붓는 '스테이닝(Staining)' 기법을 선보였다. 물감이 캔버스 표면에 얹히는 것이 아니라 천 속으로 스며드는 방식으로, 번짐과 흡수가 만들어내는 투명하고 유동적인 색면이 특징이다. 이 기법은 이후 모리스 루이스, 케네스 놀런드 같은 작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색면 회화라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헬렌 프랑켄텔러, 〈산과 바다(Mountains and Sea)〉, 1952, 캔버스에 유채 및 목탄, 219.4×297.8cm, 헬렌 프랑켄탈러 재단 소장, 워싱턴 D.C. 국립미술관 장기 대여
색면 회화란 무엇일까?
색면 회화(Color Field Painting)는 1950-60년대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의 한 갈래로 발전한 미술 운동이다. 격렬한 붓질과 신체적 행위를 강조한 액션 페인팅과 달리, 색면 회화는 넓고 평평한 색의 덩어리 자체가 화면을 지배하도록 했다. 형태나 서사보다 색이 직접 감각과 감정에 작용한다는 믿음이 바탕에 있었다. 마크 로스코의 거대한 색채 직사각형, 바넷 뉴먼의 수직선으로 분할된 단색 화면이 대표적인 예다. 색 자체를 언어로 삼은 이 회화들은 보는 사람을 색의 장 안에 완전히 몰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김환기의 전면점화와 박래현의 먹점이 향한 서로 다른 곳
다시 한국 현대미술의 블루칩, 김환기의 전면점화로 돌아와 보자. 김환기는 무수한 점을 찍어 화면을 채우며 그 반복 속에서 고향과 우주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냈다. 감정을 담은 반복이었다. 반면 박래현의 먹점은 감정보다 설계에 가까웠다. 점 하나를 찍을 때마다 판단이 개입했고 그 판단들이 모여 하나의 색면을 완성했다. 같은 반복이지만 김환기의 반복이 정서를 향했다면 박래현의 반복은 구조를 향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두 작가가 전통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김환기가 한국적 서정을 점이라는 형식으로 압축했다면 박래현은 발묵이라는 동양화의 기법적 전통을 추상의 문법 안으로 끌어들였다. 목적에 일부 차이가 있지만, 방식이 유사한 두 작업은 같은 시대에 한국 화단 안에서 동시에 전개되고 있었다. 김환기의 전면점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다시 읽히고 있는 것처럼 박래현의 수묵추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다.
감춰있는 지성의 빛이라는 말이 정확했던 이유
동시대 비평가 김영주는 박래현의 작품에서 "감춰있는 지성의 빛"을 읽어냈다. 지금 돌아보면 이 표현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꽤 정확한 분석이었다. 박래현의 작품에서 지성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수만 번의 먹점이 만들어낸 색면은 언뜻 보면 감각적인 결과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치밀한 계획과 반복적인 판단이 층층이 쌓여 있다. 감춰져 있기 때문에 더 강하게 작동하는 종류의 지성이다. 한국 근현대미술에서 이 방향을 박래현만큼 일관되게 밀고 나간 작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이어서 다음 편에서는 같은 시대 같은 화단 안에서 박래현이 묵림회 작가들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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