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묵림회와 박래현의 치열했던 수묵추상 실험
1960년대 동양화단은 밀려들어오는 현대미술 사조 앞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1960년대 수묵 추상 실험을 주도했던 묵림회와 박래현을 통해 그 치열했던 고민을 돌아본다.
1960년대 동양 화단이 고민했던 한 가지 질문
1959년 서세옥 민경갑 정탁영 장선백 네 명의 화가가 묵림회를 결성했다. 동양화의 전통 재료인 수묵으로 동시대 추상을 실험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들이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서구에서 건너온 추상의 언어를 수묵으로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실험은 꽤 빠르게 한국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먹을 흘리고 튀기고 긁어내는 방식으로 앵포르멜의 에너지를 동양화 재료 안에서 구현해낸 것이었다. 같은 시기 박래현도 수묵으로 추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묵림회의 활동가 박래현의 수묵추상은 재료와 시대가 거의 유사했다.
묵림회는 어떤 미술가 그룹이었을까?
묵림회(墨林會)는 196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의 동양화가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한국 최초의 수묵 추상 그룹이다. 동양화의 현대화에 뜻을 품은 서세옥이 결성을 주도했으며 민경갑 정탁영 장선백 등이 창립 멤버로 함께했다. 이후 안상철 전영화 차평리 등이 합류하며 그룹의 폭을 넓혔다. 동양화의 전통 재료인 수묵을 고수하면서도 서구 현대미술의 추상적 언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당대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창립 멤버였던 민경갑은 앵포르멜을 시도한 수묵추상 작품으로 1961년부터 1963년까지 국전에서 연이어 특선을 차지했으며 정탁영과 전영화의 작품도 국전에서 입선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묵림회의 등장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동양화단이 서구 추상과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는 어떤 선언이었다.

1960년대 수묵추상의 두 가지 방향
묵림회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크게 두 가지 방향이 보인다. 하나는 먹의 물리적 행위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향이다. 서세옥의 <정오>(1958-1959)를 보면 흰 바탕 위로 굵고 역동적인 먹선이 수직으로 분출한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 속도감이 그대로 남아있다. 민경갑의 <작품/숲Ⅲ>(1960)에서도 먹과 채색이 화면 위에서 충돌하고 겹치며 예측 불가능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안상철의 <몽몽춘>(1961)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242×50cm의 가로로 긴 화면에 형태 없이 묵선과 점만을 사용했는데 특이하게도 종이와 함께 돌을 재료로 활용했다. 먹점들이 한지 속으로 스며든 형태가 아니라 표면 위에 빠르게 흩뿌려진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과 유사하다. (이러한 류의 작품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이응노의 '생맥'일 것이다.)
안상철의 <몽몽춘>은 어떤 작품일까?
안상철은 보수적이었던 1960년대 한국화단에서 파격적인 실험으로 주목받은 작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03년 덕수궁미술관에서 그의 회고전을 열며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던 작가'로 소개했다. 안상철의 <몽몽춘>(1961)은 그 실험 정신이 가장 이른 시기에 압축된 작품 중 하나다.
242×50cm의 가로로 긴 화면에 형태 없이 묵선과 점만으로 균질한 화면을 구성했는데 특이하게도 종이와 함께 돌을 재료로 활용했다. (혹은 어떤 전시에서는 작품을 세로로 전시하기도 했다.) 먹점들이 한지 속으로 스며든 형태가 아니라 표면 위에 빠르게 흩뿌려진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과 유사하다. 묵림회는 동양화의 순수한 전통 정신을 견지하면서도 새로운 현대적 형식을 추구한다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몽몽춘>은 그 실험이 얼마나 과감한 방향으로 나아갔는지를 보여준다. 재료는 수묵이었지만 그것을 다루는 논리는 서구 추상표현주의의 것이었다.

다른 한쪽에는 수묵 고유의 물성인 발묵의 번지기 효과를 전면에서 실험한 작품들이 있었다. 서세옥의 1950년대 작품들에서는 먹이 화면 전체에 넓게 스며들며 농담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시도가 등장한다. 민경갑의 <내공>(1968)에서도 발묵의 번지기 효과가 화면을 압도하며 두터운 색 층을 만들어낸다. 정탁영의 <산>(1960) 역시 먹의 흘러내림과 번짐을 통해 표면 위에 입체적인 흔적을 남긴다. 이들의 작업은 한지와 먹의 매체적 특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동양화의 재료적 전통을 계승했다.

색채 사용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묵림회 작가들이 먹 위주의 무채색 계열을 선호했다면 박래현은 1960년대 수묵추상 전반에 걸쳐 적색 청색 황색과 같은 오방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조선 백자나 신라 토기를 연상시키는 형태들이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있고 맷방석 연작에서는 짚신을 꼬아 만든 공예품이나 엽전 꾸러미를 연상시키는 모티브가 등장한다. 원색을 세밀한 먹점으로 처리하는 방식은 강렬한 첫인상 이면에 온화하고 내밀한 감성을 만들어냈다. 화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조용하다는 것이 박래현 작품의 특징이다.

'서정성'이라는 단어가 박래현에게 유독 어울리는 이유
이 모든 것이 모여 박래현 특유의 조형 언어를 만든다. 무수한 먹점들이 쌓여 만들어진 색면은 몬드리안의 차갑고 단단한 색면이나 큐비즘의 뚜렷하고 직선적인 경계와는 다르다. 섬세하고 유기적이다. 원색의 색면 안에서 서로 섞여들어가며 불규칙한 무늬를 만드는 먹점은 평면 안에 풍부한 양감을 부여하고 새로운 공간감을 창출한다. 당대 비평에서 박래현의 작품을 두고 '장식성(裝飾性)의 미학'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장식적이라는 말이 표면적 꾸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밀하게 설계된 내부 구조가 만들어내는 풍부함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우리의 것으로 현대 미술과 맞닿는 법, 그 치열했던 고민

박래현은 동양화를 오랫동안 수련한 작가였다. 1943년작 <단장>에서 드러나듯 전통 동양화 (수묵채색화)의 문법을 완전히 체득한 상태에서 추상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박래현의 작품은 추상이지만, 한국적인 향기가 아주 짙게 남아있다. 박래현과 묵림회가 활동했던 1960년대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특별한 시기였다. 수백 년간 (상대적으로) 느리게 교류하며 독자적인 흐름을 이어오던 동양화단이 처음으로 세계 미술과 거의 실시간으로 대화를 시작한 때였기 때문이다.
앵포르멜이 유럽에서 전개되는 동안 한국의 동양화가들도 그 흐름을 감지하고 자신들의 재료와 언어로 응답해야 했다. 형식을 바꿀 것인가 내용을 바꿀 것인가 혹은 둘 다 바꿀 것인가? 그 고민의 흔적이 이 시기 수묵추상 작품들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묵림회는 서구의 방법론을 수묵으로 번역하는 방향을 택하며 여러 수묵 추상 실험 작품들을 만들었다.

박래현의 1960년대 수묵추상을 들여다보면 당대 동양 화단 미술가들의 고민의 깊이를 엿볼 수 있다. 발묵의 번지기 먹점의 집적 오방색의 활용 한지 여백의 적극적 사용과 같은 요소들은 동시대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부분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박래현이 이것들을 조합하는 방식은 독특했다. 충동 대신 판단을 먹선 대신 먹점을 분출 대신 침잠을 선택한 것이 박래현만의 일관된 태도였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 같은 재료를 다루면서도 박래현의 수묵추상에는 다른 작가의 작품과 혼동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스타일이라는 것이고 스타일은 오랜 고민과 수련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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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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