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문화

데미안 허스트, 까와빠를 모두 미치게 만드는 악동 할배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은 진짜 팔린 걸까? 작품 연도는 왜 조작했을까? 데미안 허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데미안 허스트의 5가지 논란

국립현대미술관이 데미안 허스트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전시 소식이 알려지자 미술계 안팎에서 반응이 쏟아졌다. 약 30억 원의 공적 자금을 들여 이미 시장에서 정점을 찍은 (AKA 한물간) 작가를 국립 미술관이 모셔온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 논란으로 마케팅이 잘 되어서인지, 데미안 허스트 전시관은 웨이팅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데이미안 허스트(데미안 허스트)란 누구인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는 영국 출신의 현대미술가로 YBA(Young British Artists)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포름알데히드 수조 안에 박제된 동물, 수천 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스팟 페인팅, 다이아몬드 8601개로 뒤덮인 해골까지 그의 작품들은 등장할 때마다 미술 시장과 비평계 양쪽을 모두 흔들었다. 199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지형을 바꾼 작가라는 평가와 자본주의 시스템을 가장 영리하게 이용한 사업가라는 비판이 그의 이름 옆에 항상 함께 붙어다닌다.

"국립현대미술관 데미안 허스트 전시,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 백상아리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전경. 관람객들이 거대한 상어를 가까이서 촬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데미안 허스트 전시,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 백상아리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전경. 관람객들이 거대한 상어를 가까이서 촬영하고 있다.

그는 현대미술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꼽는 극혐 포인트를 거의 모두 갖춘 인물이기도 하다. 직접 그리지 않은 그림, 죽은 동물을 넣은 수조, 아이디어만으로 수백억에 팔린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이게 왜 예술이야"라는 질문이 가장 자주 터져나오는 작가 리스트에 늘 상위에 랭킹되는 사람이랄까. 이런 반응이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미술계는 그를 20세기 말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 글에서는 2026년 상반기 국립현대미술관 데미안 허스트 전시 "데미안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를 보기 전 알아두면 좋을 몇 가지 논점을 짚어보려 한다. 이 아티클이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를 보고 체하지 않게 도와주는 현대미술 소화제가 될 수 있도록 악동 할배 데미안 허스트의 5가지 논란을 소개한다. 부디 이 전시가 현대미술의 극혐 포인트를 강화는 계기가 되지 않길 바라며!

데미안 허스트의 5가지 논란

논란 1 | 250억 다이아몬드로 1,000억이 된 작품 (그런데 뻥카)

허스트는 죽음을 소재로 삼으면서 동시에 그 죽음을 가장 비싸게 판 예술가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는 18세기 유럽인의 실제 해골을 플래티늄으로 주조하고 다이아몬드 8601개를 부착한 작품이다. 해골은 런던 이즐링턴의 박제 전문점 '겟 스터프드(Get Stuffed)'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원래 해골의 치아는 그대로 살려 작품에 삽입해 반짝이는 실물 다이아몬드 아래로 노란 치아가 그대로 달려 있는 다소 이질적인 모습이다.

처음 허스트는 제작비 800만 파운드를 자비로 조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구입을 포함한 실제 제작비는 최종적으로 150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250억 원까지 불어났다. 이 비용은 허스트 본인과 화이트 큐브 갤러리, 그리고 외부 투자자들의 공동 출자로 충당되었다. 작품의 제목은 허스트의 어머니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드는 거야,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라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을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가격이 아니라 거래 자체의 진위다. 2007년 화이트 큐브 갤러리는 이 작품이 익명의 투자자 그룹에 5000만 파운드, 당시 환율 기준 약 1000억 원에 팔렸다고 발표했다. 생존 작가 작품 거래 사상 최고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전 세계 미술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2022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허스트는 이 작품이 여전히 런던 해튼가든의 창고에 보관 중이며 화이트 큐브, 그리고 익명의 투자자들과 공동 소유 중이라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데미안 허스트 전시,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 작품과 나비 작품이 어두운 전시실 안에 나란히 전시된 모습이다. 관람객들이 유리 케이스 안의 해골을 촬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데미안 허스트 전시,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 작품과 나비 작품이 어두운 전시실 안에 나란히 전시된 모습이다. 관람객들이 유리 케이스 안의 해골을 촬영하고 있다.

그러니까 팔렸다고 발표된 작품이 실제로는 팔리지 않은 것이었다. 이에 아트 뉴스페이퍼 편집장은 당시 "현금 거래라 서류 흔적이 없다는 게 얼마나 편리한가"라고 꼬집기도 했다. 나아가 일부 보도에서는 그 '익명의 투자자 그룹'이 허스트 본인과 그의 비즈니스 매니저, 화이트 큐브 갤러리 오너였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자기들이 만들고 자기들이 산 셈이다. 즉 데미안 허스트는 제작비만 250억이 든 이 작품을 1000억에 팔았다는 사실로 자신의 시장 가치를 증명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자칭(?) 1000억짜리 작품이 이번 전시에 한국으로 와 방탄 유리 안에 들어가 있다.

이 사건은 현대미술의 가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건드린다. 현대미술 작품의 가격은 재료비나 제작 시간이 아니라 작가의 명성, 시장의 기대, 그리고 때로는 발표 그 자체로 결정된다. 거래가 실제로 성사되지 않았더라도 1000억이라는 숫자가 언론에 오르내린 순간 허스트의 시장 가치는 이미 그 숫자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스트의 작품이 비싼 이유는 작품 자체의 가치 때문만이 아니라 허스트가 주장한 가격 자체가 다시 작품의 가치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작품의 가격에 대한 질문은 허스트를 넘어 현대미술 시장과 그 시장에 속한 작품 전체가 무시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 허스트가 이듬해인 2008년 9월, 이번에는 갤러리를 완전히 우회해 소더비에서 《Beautiful Inside My Head Forever》라는 이름으로 신작 218점을 직접 경매에 올렸다. 단일 작가 경매 사상 최고 기록인 1억 1100만 파운드를 달성한 바로 그날은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날이었기도 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 허스트의 작품 가격은 정점을 찍었다. 이것이 우연인지 허스트가 설계한 마지막 퍼포먼스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죽음을 경고하는 메멘토 모리의 전통과 자본주의적 욕망이 하나의 오브제 안에서 충돌하는 것, 나아가 그 거래 자체가 허구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이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허스트가 노린 의도일지도 모른다.

논란 2 | 아니 그때는 작품이 없었잖아요..?

앞서 살펴본 논란 1처럼 허스트를 둘러싼 논쟁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파격적인 작품의 '가격'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가격 말고도 또 하나의 논란이 있다. 바로 '아이디어가 작품이 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가디언의 조사에 따르면 허스트의 포름알데히드 조각 일부가 1990년대 작품으로 표기되었으나 실제로는 2017년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7년에 처음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는 1990년대'였다는 이유로 작품이 존재하기도 이전 시기를 제작 연도로 표기한 것이다. 심지어 허스트의 직원들이 작품을 인위적으로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 aged 처리를 했다는 증언도 가디언 보도에 포함되어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허스트 측은 개념미술에서 날짜는 작품의 구상 시점을 의미하며 물리적 제작 시점보다 아이디어와 의도가 중요하다고 해명했다.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 백상아리의 정면. 벌어진 입과 날카로운 이빨이 정면으로 보이며 관람객들의 모습이 유리에 반사되어 겹쳐 보인다.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 백상아리의 정면. 벌어진 입과 날카로운 이빨이 정면으로 보이며 관람객들의 모습이 유리에 반사되어 겹쳐 보인다.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란?

개념미술(Conceptual Art)은 작품의 물리적 완성도나 제작 기술보다 아이디어와 개념 자체를 예술의 본질로 보는 미술 경향이다.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되었으며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업이 그 선구로 꼽힌다. 변기를 미술관에 가져다 놓은 뒤샹의 《샘》이 충격이었던 이유는 변기라는 물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예술로 선언한 행위와 개념에 있었다. 개념미술에서는 작가가 직접 손을 대지 않아도, 심지어 눈에 보이는 오브제가 없어도 예술이 성립할 수 있다. 허스트의 해명이 이 논리 위에 서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허스트의 작품은 뒤샹의 《샘》과 달리 포름알데히드 수조라는 물리적 실체가 분명히 존재한다. 개념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 개념을 담은 오브제가 실제로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1990년대라는 연도가 중요한 이유는 그 시기가 허스트가 YBA의 중심으로 미술계를 뒤흔들던 전성기이기 때문이다. 같은 작품이라도 그 시기에 만들어진 것과 2017년에 만들어진 것의 시장 가치는 전혀 다르다. 허스트의 기록이 개념미술의 태도 위에 선 합리적인 행동인지, 아니면 시장 가치를 높이기 위한 기만인지에 대해 미술계 안에서도 의견은 여전히 갈린다. 전시장에서 작품 캡션에 적힌 연도를 작품이 완성된 아니 최소한 제작이 시작된 시기가 아니라 '아이디어가 탄생한' 시기를 작성한 허스트의 행동은 사기일까 아니면 개념미술에는 적용될 수 있는 합리적인 행동일까?

논란 3 | 데미안 허스트가 안 그리고 조수들이 다 그렸다고..?

세 번째 논란이자 데미안 허스트의 또 하나의 오랜 논란은 자신이 직접 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작품이 있다는 것이다. 허스트는 스팟 페인팅 1400여 점 중 자신이 직접 그린 것은 다섯 점뿐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이유는 솔직했다. 조수들이 자신보다 더 잘 그린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내 스팟 페인팅 중 최고는 Rachel이 그린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데미안 허스트 전시에서도 수십 점의 스팟 페인팅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중 허스트의 손이 직접 닿은 작품이 몇 점인지는 알 수 없다.

데미안 허스트의 스팟 페인팅 두 점으로 왼쪽은 물감이 흘러내린 흔적이 있는 초기작이고 오른쪽은 완벽하게 균일한 점들로 구성된 전형적인 스팟 페인팅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스팟 페인팅 두 점으로 왼쪽은 물감이 흘러내린 흔적이 있는 초기작이고 오른쪽은 완벽하게 균일한 점들로 구성된 전형적인 스팟 페인팅이다.

사실 조수를 활용한 제작 방식 자체는 미술사에서 낯선 일이 아니다. 루벤스와 렘브란트는 대형 공방을 운영하며 조수들과 함께 작품을 완성했고, 라파엘로 역시 많은 작품을 제자들과 분업해 제작했다. 한국에서도 일부 자수 미술가들이 북한 자수를 활용해 작품을 완성한 사례가 있다. 작가 함경아는 중국의 중간자를 통해 자신의 도안을 북한 자수 노동자들에게 전달하고 수를 놓게 한 뒤 돌려받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해왔다.

그런데 허스트의 스팟 페인팅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루벤스의 공방 작업이나 함경아의 자수 작업은 고도의 기술과 오랜 숙련을 요구하는 과정이므로 조수라고 할지라도 대체될 수 없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다. 반면, 스팟 페인팅은 동일한 크기의 색점을 균일하게 반복하는 작업이므로 이러한 작업들보다 기술적으로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따라서 조수의 도움을 받아 작품이 제작되었으며, 그 조수가 언제나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 나아가 오히려 작업이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작업의 편리성을 위해 조수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에서 조금 더 충격으로 다가온다.

논란 4 | 몰래 해골을 끌어 안고 웃어 보이며 '웰컴'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데미안 허스트 전시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바로 '죽음'이다. 허스트의 죽음에 대한 집착은 꽤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10대 시절 리즈의 한 시체안치실에 몰래 들어가 시신을 촬영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충격적인 경험이 이후 작업 전반에 흐르는 죽음의 감각을 만들어낸 출발점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전시 공간 벽면에 적힌 데미안 허스트의 문구 '모든 것에는 삶과 죽음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옆으로 담배꽁초가 담긴 재떨이와 의자가 놓인 설치 작품.
전시 공간 벽면에 적힌 데미안 허스트의 문구 '모든 것에는 삶과 죽음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옆으로 담배꽁초가 담긴 재떨이와 의자가 놓인 설치 작품.

그런데 허스트에게 죽음은 단순한 개인적 집착이 아니었다. 그가 세계 무대에 등장한 1989년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던 해였다. 자본주의가 사실상 유일한 승자로 선언된 그 시점에 YBA 세대가 등장했다. 이전 세대 예술가들이 자본주의에 맞서거나 그것을 비판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이들은 달랐다. 예술을 고고한 이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고 승리해야 하는 실존적인 게임으로 받아들였다. 이 시대에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업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시대의 불안을 가장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방식이었다.

YBA(Young British Artists) 세대란 무엇일까?

YBA(Young British Artists)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에 걸쳐 영국에서 등장한 젊은 예술가 집단을 가리킨다. 골드스미스 예술대학 출신이 많았고 허스트가 그 중심에 있었다. 이들의 작업은 도발적이고 상업적이며 미디어 친화적이었다. 영국의 광고 거물 찰스 사치가 이들의 작품을 대거 수집하며 국제 미술 시장에 띄운 것이 YBA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예술과 자본이 처음부터 공모 관계로 출발한 세대였던 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의 첫 번째 작품으로 젊은 허스트가 절단된 사람의 머리를 끌어안고 웃고 있는 사진을 선정했다. 전시를 기획한 측이 허스트를 어떤 작가로 읽고 있는지 그 한 장의 사진이 압축적으로 말해준다. 논란 포인트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냥 이 작품의 존재 자체가 논란이다. 이번 전시 1관 마지막에는 권총 자살 장면을 담은 사진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고 QR코드를 통해서만 전체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구조다. 19금 전시로 별도 구분되지 않았지만 전시실 안에 어린아이들도 함께 있었다. 허스트가 설정한 불편함의 수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전시 공간 자체가 질문하고 있는 셈이다.

논란 5 #미술관 안에 시체를 초대하다

허스트는 동물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육체와 죽음에 대한 응시하려 한다.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은 4미터가 넘는 백상아리를 포름알데히드 수조 안에 넣은 데미안 허스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1991년 처음 공개되었을 때 미술계를 뒤집어놓은 이 작품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원래의 상어가 시간이 지나면서 부패해 2006년 새로운 상어로 교체되었다는 점이다. 죽음을 박제하려 했던 작품이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한 셈이다.

죽었던 상어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으로 태어나며 다시 한번 삶을 얻었고, 다시 한번 늙어서 쭈글쭈글 주름이 생기고 걸리기 위한 구멍이 숭숭 생겨도 영생을 얻은 줄만 알았는데, 다시 한번 죽어서 싱싱한 젊은 죽은 상어로 교체된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이 거대한 작품을 분리된 형태로 하나하나 설치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그 설치 과정을 담은 영상을 국립현대미술관 공식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전시실에서 만나는 또 다른 작품 《천 년》은 죽음을 더 날것으로 보여준다. 유리 케이스 안에 썩어가는 소머리가 놓여 있고 그 주위로 파리들이 들끓는다. 파리들은 먹이를 먹고 알을 낳고 부화하고 또 죽는다. 이 순환이 전시 기간 내내 실제로 일어난다. 포름알데히드로 죽음을 정지시킨 상어 작품과 달리 이 작품 안에서 죽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된다. 허스트는 죽음을 보존하는 동시에 죽음이 진행되는 장면을 나란히 전시실 안에 들여놓았다. 인간에게 죽음을 마주시키기 위해서 동물의 죽음을 수단으로써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인간의 시체는 박제되어 전시되지는 못했지만 전시장 곳곳에서는 죽은 동물들의 시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데미안 허스트의 파리 작품 《천 년》. 파란 자외선 살충기와 수천 마리의 죽은 파리들이 유리 케이스 안팎을 가득 채우고 있다."
데미안 허스트의 파리 작품 《천 년》. 파란 자외선 살충기와 수천 마리의 죽은 파리들이 유리 케이스 안팎을 가득 채우고 있다.

죽음을 상기시키는 요소를 활용한 허스트의 작업은 17세기 유럽 정물화의 메멘토 모리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중세 유럽에서 시작된 이 전통은 해골, 썩어가는 과일, 꺼져가는 촛불 같은 이미지를 통해 삶의 덧없음과 죽음의 필연성을 상기시키는 예술적 관습이었다. 피터르 클라스의 《바니타스 정물》, 필리프 드 샹파뉴의 해골과 튤립과 모래시계가 나란히 놓인 정물화,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속 바닥에 숨겨진 해골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메멘토 모리와 바니타스 회화란 무엇인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중세 유럽에서 시작된 이 전통은 해골, 썩어가는 과일, 꺼져가는 촛불 같은 이미지를 통해 삶의 덧없음과 죽음의 필연성을 상기시키는 예술적 관습이었다. 단순히 죽음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는 장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바니타스(Vanitas) 회화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바니타스는 라틴어로 '허무함'을 뜻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시들고, 아무리 화려한 삶도 끝난다는 것을 그림 안에 촘촘히 새겨 넣었다. 피터르 클라스의 《바니타스 정물》, 필리프 드 샹파뉴의 해골과 튤립과 모래시계가 나란히 놓인 정물화,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속 바닥에 숨겨진 해골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 그림들 앞에서 당대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죽음을 동시에 마주했다. 허스트가 한 일은 그 전통을 21세기의 포름알데히드와 다이아몬드로 번역한 것이었다.

허스트는 이 수백 년 된 전통을 21세기의 언어로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인다. 그 정점이 바로 논란 1에서 살펴본 《신의 사랑을 위하여》다. 동물의 시체로 둘러싸인 인간의 실제 두개골이다. 하지만 두개골을 그대로 가져다 두면 노골적일 수 있으니 데미안 허스트는 빼곡히 다이아몬드를 붙여서 두개골을 작품으로 둔갑시켰다. 다이아몬드 해골 앞에 서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경고와 자본주의적 욕망이 하나의 오브제 안에서 충돌하는 허스트의 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 혹은 평소에 보기 어려운 다이아몬드 반짝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없는 《무리에서 멀리》는 포름알데히드 수조 안의 어린 양을 담은 작품인데 종교적 희생 제물의 이미지와 메멘토 모리의 전통이 동시에 겹쳐지는 작품이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죽음을 미술관 안으로 직접 들여오는 것, 허스트의 꿈은 자신의 시체를 미술관 안에 전시하는 것은 아닐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어지는 약과 메스에 대한 허스트의 집착을 또 보면 허스트의 죽음은 굉장히 멀 것 같기도 하다. 죽음을 탐구하고 연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또 오래 살 것 같다는 역설.

왼쪽: 파리들이 가득 들끓는 유리 케이스 바닥에 부패한 소머리가 놓인 작품 《천 년》 하단 클로즈업. 오른쪽: 수백 마리의 나비 날개를 붙여 만든 만다라 형태의 작품 클로즈업.
왼쪽: 파리들이 가득 들끓는 유리 케이스 바닥에 부패한 소머리가 놓인 작품 《천 년》 하단 클로즈업. 오른쪽: 수백 마리의 나비 날개를 붙여 만든 만다라 형태의 작품 클로즈업.
데미안 허스트, 꾼과 거장 사이

결국 허스트를 둘러싼 모든 논쟁을 알고 '대규모 회고전'이라는 전시를 봤을 때 우리는 정말 그를 예술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는 천재적인 예술가인가, 아니면 치밀한 사업가일까? 이 질문 자체까지도 허스트가 설계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데미안 허스트의 컬러 스팟 페인팅 앞에 선 관람객들. 물감이 흘러내린 흔적이 있는 대형 페인팅으로, 조수가 아닌 허스트가 직접 그린 것으로 알려진 초기 스팟 페인팅 계열
데미안 허스트의 컬러 스팟 페인팅 앞에 선 관람객들. 물감이 흘러내린 흔적이 있는 대형 페인팅으로, 조수가 아닌 허스트가 직접 그린 것으로 알려진 초기 스팟 페인팅 계열

데미안 허스트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척하며 돈을 번 사기꾼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의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여 그 속성을 증명한 예술가일까? 전시를 다 보고 나서도 그가 예술가인지 사업가인지 여전히 혼란스럽다면 그것이 아마 허스트가 의도한 정답에 가장 가까운 상태일 것이다. 거장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면 악동할배 아니면 본투비 아티스트 정도로 마무리해보자. 오늘 소개한 데미안 허스트의 5가지 논란이 전시 관람이 충격과 공포로 끝나지 않도록 돕는 소화제가 됐으면 좋겠다. 다음 아티클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왜 이 전시를 열었는지, 그리고 이 전시가 한국 현대미술 담론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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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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